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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초창기 석탈해 이주 설화의 정치적 이용 – 권력 정당성을 위한 이야기의 힘

신라 초창기 석탈해 이주 설화의 정치적 이용 – 권력 정당성을 위한 이야기의 힘

역사는 종종 사실과 전설, 그리고 정치적 필요가 뒤섞인 채 전해집니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 이후, 왕권이 아직 미약하던 시기에 등장한 인물 석탈해(昔脫解)에 관한 이주 설화는 단순한 기원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세우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가공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 설화를 정치적 시선에서 재조명하면, 신라 초기 권력 구조와 외교 관계, 그리고 대중 설득의 기술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신라 초창기 석탈해 이주 설화의 정치적 이용 – 권력 정당성을 위한 이야기의 힘

 

석탈해 설화의 내용과 기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석탈해는 본래 일본 규슈 북부 혹은 왜국 계통의 인물로, 한반도로 건너와 신라의 귀족이 되었고 결국 4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설화 속에서 그는 특이한 배경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출생지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대마도나 일본 북부 지역으로 비정되기도 합니다. 석탈해는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바다를 건너 신라로 왔으며, 탁월한 지략과 덕망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고 전합니다.

이 서사의 중요한 지점은 ‘외부에서 온 인물이 신라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신라가 폐쇄적인 혈통 사회였음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기록이며, 그 자체로 정치적 함의가 있습니다.

설화의 정치적 활용 – 외부 혈통의 합법화

신라 건국 초기, 왕권은 여전히 박·석·김 3성(氏) 귀족 세력의 합의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왕위 계승은 단일 가문 독점이 아니었고, 외부 출신 인물이 권력을 차지하려면 혈통의 정당화가 필요했습니다.
석탈해 설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합니다.

  1. 천명(天命)의 부여
    설화 속에서 석탈해의 탄생과 이주에는 신비로운 징조와 예언이 따라붙습니다. 이는 하늘이 그를 왕으로 선택했다는 메시지입니다.
  2. 외부와의 연계 강조
    당시 신라는 왜국과의 교역, 혼인, 군사 동맹이 빈번했습니다. 석탈해를 ‘외부와 연결된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대외관계를 강화하고, 해외 출신 혈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3. 내부 갈등 완화 장치
    특정 토착 세력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석탈해를 ‘중립적 외부인’으로 포장하여 귀족 간 권력 균형을 맞추는 정치적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이야기 속 숨은 정치 메시지

석탈해 이주 설화에는 몇 가지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 “왕권은 혈통만이 아니라 능력으로도 정당화된다.”
    이는 귀족 중심 사회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고 전환이었습니다.
  • “외부 인재도 신라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는 초기 신라의 개방성과 확장 전략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수단이었습니다.
  • “하늘의 뜻은 경계 너머에서도 온다.”
    이는 당시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왕권을 신성화하고 비판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실제 역사와의 간극 – 사실일까, 각색일까?

석탈해가 정말 일본계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외부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각색된 인물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일부 학자는 ‘다나파국’을 실제 일본 지역으로 보고, 석탈해가 실존 인물일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견해에서는 그를 신라 내부 세력 중 한 갈래가 ‘외부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포장한 가공 인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시 신라는 외교·무역을 통해 다양한 외부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이를 설화로 반영했을 가능성.
  • 외부 출신 왕의 즉위가 실제로 가능했는지를 의심하는 사료상의 한계.
  • 정치적 목적에 맞춘 ‘이주 서사’의 전형적인 구조와 일치.

설화의 현대적 의미

석탈해 설화는 단순히 고대의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치·사회에서도 외부 출신 리더의 등장을 정당화하는 서사 전략은 여전히 활용됩니다.
다문화 사회의 지도자, 기업 경영진의 외부 영입, 또는 국제기구 수장의 선출 과정에서도, 인물의 출신과 배경은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대중 설득의 도구가 됩니다.

결국 석탈해 설화는 권력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이야기와 상징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결론 – 권력을 만드는 건 이야기다

신라 초기의 석탈해 이주 설화는 한 개인의 모험담이 아니라, 왕권 정당성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장치였습니다. 외부 출신이 왕이 되는 전례를 만들고, 이를 대중이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어 설화는 법률이나 무력보다 더 설득력 있는 도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뉴스, 정치 연설, 기업 브랜딩 속에서 비슷한 패턴을 발견합니다.
이야기는 여전히 권력을 만들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석탈해 설화는 그 오래된 예시 중 하나일 뿐, 그 영향력은 시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