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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독립협회와 의회 설립 운동: 조선, 입헌군주제를 향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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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협회와 의회 설립 운동: 조선, 입헌군주제를 향한 도전

1898년, 조선은 조용한 전환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단지 왕정의 개혁이 아닌,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 다시 말해 ‘입헌군주제’의 실현을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는 바로 독립협회가 있었고, 그들의 목표는 의회 설립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정치 실험이었습니다.

비록 그 결말은 실패였지만, 이 시도는 조선이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하려는 최초의 집단적 노력이었고, 이후 민주주의의 씨앗이 됩니다.

독립협회와 의회 설립 운동: 조선, 입헌군주제를 향한 도전

🏛 독립협회의 탄생: 민중 속의 개화 세력

독립협회(獨立協會)는 1896년 7월 서재필, 윤치호, 이완용 등 개화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민간 정치단체입니다. 애초 목적은 자주 독립 의식의 고취와 개혁 여론의 형성이었습니다. 독립신문을 통해 대중 계몽 활동을 펼쳤고,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과 독립관 건립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협회는 단순한 계몽 단체를 넘어, 정치적 개혁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특히 의회 설립 운동, 만민공동회, 헌의6조 제정 등은 이들의 급진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 헌의6조: 입헌군주제의 밑그림

1898년 10월, 독립협회는 고종 황제에게 헌의6조(獻議六條)를 제출합니다. 이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견제하며, 법치에 기반한 국가를 만들자는 입헌군주제적 개혁안이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외국과 맺는 조약은 중추원(의회) 의결을 거칠 것
  2. 예산과 결산은 의회가 심의할 것
  3. 정부 고관 임명 시 공론을 반영할 것
  4.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을 금지할 것
  5. 민의에 기반한 자주적 개혁을 시행할 것
  6. 민권 보호를 위해 법률을 강화할 것

이 조항들은 오늘날 민주국가의 기본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왕권의 절대성을 견제하고자 한 점에서, 이는 조선이 입헌군주제로 나아가려는 명백한 선언이었습니다.

📢 만민공동회: 백성의 정치 참여 실현

독립협회의 가장 획기적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였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시민 집회와 같은 형태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1898년 3월부터 12월까지 지속된 만민공동회는 10여 차례 이상 개최되었으며, 특히 10월~11월의 집회는 매일 수천 명이 경운궁 앞에 모이는 대규모 정치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연설을 통해 정치 개혁, 의회 설치, 언론 자유, 내정 개혁을 주장했고, 고종에게 청원서를 올리는 등 직접 정치 참여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만민공동회는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정권에 실제 영향을 미치는 정치 집단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민중의 정치 참여 사례이며, 현대 시민운동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보수 세력의 반발: ‘공화정 음모’라는 낙인

이러한 혁신적 흐름에 대해, 조선 내 수구 보수 세력은 강하게 반발합니다. 특히 궁내부와 일부 왕족, 관료들은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를 두고 공화정을 도모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고, 이는 곧 탄압의 명분이 됩니다.

보수 세력은 “왕정이 무너지고 백성의 정권이 강해진다”는 논리를 앞세워 의회 설치에 대한 거센 저항을 벌였습니다. 특히 군부와 종친 세력은 독립협회에 ‘역모’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고종에게 해산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 고종의 해산 명령과 의회의 좌절

결국 1898년 12월 4일, 고종은 독립협회 해산을 명령합니다. 군대는 경운궁 앞에 집결한 만민공동회 군중을 해산시켰고, 주요 간부들은 체포되거나 감금되었습니다.
고종은 헌의6조를 철회했고, 의회 설립 논의는 역모 시도로 간주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조선 역사상 민간 주도의 입헌 정치 실험이 제도적으로 좌절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민중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던 그 정신은 이후 항일 독립운동,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정치적 씨앗이 됩니다.

✍ 마무리하며 - 실패했지만 꺼지지 않은 불꽃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중심으로 한 의회 설립 운동은 조선이 입헌군주제, 나아가 근대 민주주의로 나아가려 했던 가장 진취적인 시도였습니다. 비록 보수 세력의 탄압과 고종의 퇴행적 선택으로 실패했지만, 이 시도는 조선이 더 이상 왕의 나라가 아닌 백성의 나라로 가고자 했던 실험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의회민주주의와 정치 참여의 권리는, 바로 이 실패한 실험 속에서 잉태된 결과입니다.
역사는 한 번의 성공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첫 시도조차도 값진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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