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는 어떤 돈을 썼을까
고려 시대에는 어떤 돈을 썼을까
고려 시대의 화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을 넘어, 당시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나 동전처럼, 고려 사람들도 다양한 형태의 화폐를 통해 경제 활동을 영위했습니다. 특히 고려 시대의 화폐인 건원중보와 활구(은병)는 당시 사회의 경제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이 글을 통해 고려 시대에 사용된 독특한 화폐와 그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고려 시대의 주요 화폐 건원중보와 해동통보
고려 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화폐가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고려 성종 2년(993년)에 발행된 건원중보입니다. 건원중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鐵錢)으로, 당시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건원중보는 널리 유통되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쌀이나 베 같은 곡물이나 옷감을 더 편리한 교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화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행을 시도하였으나, 실물 경제에 익숙한 백성들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였다.
이후 숙종 대에는 화폐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됩니다. 숙종은 주전도감(鑄錢都監)이라는 화폐 발행 기관을 설치하고 다양한 동전들을 주조했습니다. 이때 발행된 화폐로는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삼한중보 등이 있습니다. 이 중 해동통보는 글자체가 아름다워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널리 쓰이기보다는 일부 특권층이나 관청의 거래에 주로 사용되었고, 백성들의 일상적인 경제생활에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고액 거래의 상징 활구(은병)
고려 시대 화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활구, 즉 은병입니다. 활구는 고려 숙종 6년(1101년)에 발행된 고액 화폐로, 그 모양이 독특합니다. 한반도 지도를 본떠 병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은 1근(약 600g)으로 주조되었습니다. 활구는 당시 쌀 100가마니 정도의 가치를 지닌 고액권이었기 때문에 주로 국가 간의 무역이나 고위 귀족층의 대규모 거래에 사용되었습니다.
활구는 당시 고려의 발전된 은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화폐 주조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유물입니다. 또한, 이는 고려가 송, 요 등 주변국과의 무역에서 은을 중요한 교역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활구가 한반도 지도를 본뜬 것은 고려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활구는 단순한 화폐를 넘어, 당시 고려의 예술성과 기술력을 집약한 작품이자 국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활구 역시 널리 유통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액 화폐의 한계: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기에는 가치가 너무 높았습니다.
- 불안정한 경제 상황: 화폐의 가치가 자주 변동하여 신뢰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 실물 경제의 지배: 쌀이나 베와 같은 실물이 여전히 주요 거래 수단이었습니다.
화폐 유통의 한계와 그 원인
고려 시대의 화폐는 발행 자체는 활발했으나, 실질적인 유통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건원중보나 해동통보가 일반 백성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의 기술력 한계로 인해 화폐의 규격이나 가치가 일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화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둘째, 당시의 경제 구조가 화폐보다는 쌀이나 베를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흉년이 들면 화폐 대신 곡물을 비축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셋째, 화폐를 유통시킬 만한 충분한 상업적 기반이 미비했습니다. 전국적인 상업망이 구축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화폐를 위조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화폐 경제의 안정성을 해쳤습니다.
고려의 화폐 경제는 지배층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실물 경제의 벽에 부딪혔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려 시대의 화폐 주조 시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고려가 점차 발전하는 사회에 맞추어 경제 시스템을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증거이며, 이후 조선 시대와 근대 한국의 화폐 경제 발전에 중요한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비록 활구와 건원중보가 널리 쓰이지는 못했지만, 이는 고려 시대의 경제적 고민과 그 발자취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려 시대 화폐 유통 주요 사건
| 시기 | 주요 사건 | 화폐 관련 내용 |
|---|---|---|
| 고려 성종 2년(993) | 건원중보 주조 |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 발행. |
| 고려 숙종 원년(1096) | 주전도감 설치 | 화폐 발행 및 유통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 설립. |
| 고려 숙종 5년(1100) | 해동통보, 삼한통보 주조 | 화폐 유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동전 발행. |
| 고려 숙종 6년(1101) | 활구(은병) 주조 | 고액 거래를 위한 병 모양의 은화 발행. |